"Photo-Realism", Norbert Lynton, 2003 (KO)


포토 리얼리즘은 사진의 형상과 기법에 의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팝아트와도 연관시킬 수 있다.
이 경향에 포함시킬 수 있는 화가들의 범위도 역시 광범위하다.
(사실상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많은 화가들이 사진을 직접 보면서
작업하였다.)
예를 들어, 맬컴 몰리(Malcolm Morley)는 1960년대 중반부터
커다란 캔버스에 잡지 사진을 세밀하게 복사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사진기법으로 전사한 워홀의 사진적 형상들과
비교됨과 동시에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몰리는 그가 선택한 형상들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형상들을 거꾸로 그릴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복사하는 색상과 명도변화가 갖는 의미의 영향력을 피함과
동시에 그 표면의 특성 자체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몰리는 이전의 많은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든것이 유용하다, 즉 모든 것이 미술에 적합한 소재이다"
라고 하였다. ...

이에 비해서 대부분의 포토 리얼리즘 작가들은 비교적 냉정하고
중립적이다. 많은 미술가들이 주변세계의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서
이 사진들을 캔버스 위에 투사하여 그림을 만들어내고,
투사된 형상에 준하여 채색을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것들은
가능한 한 가장 순수하게 사물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특히 매혹적인 예는 리처드 에스티스(Richard Estes)가
만들어내었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요인 중 하나는, 제작과정에서
의식, 무의식적으로 내려지는 예술적 판단의 풍부함이다.
이 예술적 판단은, 투사된 형상에 의존하지 않고는 그 복잡한
세부를 묘사하기가 어려운 시각적 자료들에 개입되고 있다.
카메라는 오직 기술적인 변수에 의해서만 통제되는 객관성을
가지고 세계를 본다. 가장 객관적인 미술가라 할지라도 카메라처럼
너그러운 평등주의적 시각으로는 어떤 정경에도 주목하지 못한다.
또한 미술가가 어느 정도는 사진에 대하여 개인적인 해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미술가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정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같이 찍혀진 슬라이드들 중에서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슬라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을 다른 크기가 아닌 바로 그 크기로
그리겠다고 결정한다. 그러고도 미술가에게는 광선에 의해 포착한
형상을 물감에 의해 고착시켜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종류의 그림 중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며, 그러한 즐거움과 함께 어떤 사념을 유도하기도 한다.
"음식점"(리처드 에스티스, 1967)을 예로 들면, 우리가 식당의 유리창
자체를 보거나 그것을 통해서 보면, 그것이 반대편 거리의 정경을
반영하는 한편 다양한 표면들과 차원들이 상호 작용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에서는 세부가 생략된 넓은 면
(미술가에 의해서 단순화된?)과 세부가 모여 있는 부분들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양식들로
이루어진 음식점의 정면과 거의 대부분이 가리워져 있는 엄격한
고전주의적 양식의 건물을 통하여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
대비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여러 소재들에서 반사되고
그가 카메라로 포착한 다양한 종류의 광선들이 다양한 강도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마술적 효과는
카메라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옵 아트 회화의 효과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 The Story of Modern Art, Norbert Lynton, Seoul, 2003, P. 302 - 306 -

Link to Richard Estes, Artnet: http://www.artnet.com/artists/richard-es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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